여행의 이유, 김영하
평소에도 우울함과 흥분 (행복함보다는 흥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차분한 즐거움이라고 보다는 일시적으로 즐거운 감정이 일시적으로 폭발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을 자주 넘나드는 나지만 요근래 들어서 더욱 걱정이 많고 우울할 때가 있었다. 특히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컸다. 그럴 때마다 내게 위로가 되는 영화 속 대사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로맨스 영화의 대표물로 추천되는 ‘About Time’ 에 시간을 여행하는 남자 주인공이 하는 대사이다.
“We are all trave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day of our lives. 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life.”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생각난 대사이기도 한데, 특히 작가는 ‘아폴로 8호’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발행된 뉴욕타임즈에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 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 인류가 지구의 승객이라는 비유는 지금으로서는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당시에는 읽자마자 무릎을 칠 만한 것이었다. 승객은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왔다가 떠나는 존재일 뿐이다. 매클리시는 이어서 우주의 이 끝 모를 차가움 속에서 우리 자신들은 형제, 서로가 형제임을 진실로 아는 형제라고 부연했다. 지구가 고작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구슬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시인은 자존심을 다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에 지구라는 행성, 푸르게 빛나는 우주의 오아시스와 우리 서로를, 모든 동식물을, 같은 행성에 탑승한 승객이자 동료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암시한 것이다."
그리고 ‘추구의 플롯’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해준다.
"로널드 B. 토비아스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에서 ‘추구의 플롯’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플롯이라고 소개한다. 주인공이 뭔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들로, 탐색의 대상은 대체 주인공의 인생 전부를 걸만한 것이어야 한다. – 그런데 추구의 플롯의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의 결말이다.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은 원래 찾으려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얻는다. 대체로 그것은 깨달음이다. 길가메시는 ‘불사의 비법’ 대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통찰에 이른다. – 이처럼 ‘추구의 플롯’으로 구축된 이야기들에는 대부분 두 가지 충위의 목표가 있다. 주인공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것(외면적 목표)과 주인공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것(내면적 목표)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추구의 플롯에 따라 잘 쓰인 이야기는 주인공이 외면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달성하도록 하고, 그런 이야기가 관객에게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독자들이 ‘추구의 플롯’을 따르는 소설이나 영화, 여행기를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로 그 플롯에 따라 사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런데 이런 외적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도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 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늘 불안정한 존재이며, 항상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뭔갈 대단히 잘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어떻게든 ‘잘’ 살아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어떤 경험이든 내게 행복한 추억, 혹은 쓰디 쓴 교훈을 남겼다.
이 책이 자기개발서는 아니지만 잠깐 얘기를 꺼내자면, 나는 자기개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하는 내용 사이에서 책을 다 읽은 나는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노력파가 아니다. 나는 늘 변하고자 했지만 변하지 않았고, 항상 '나 다운 나' 를 기준으로 조금 행복하거나 조금 우울하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와 다르게 자연스럽게 내 인생에 영향을 주는 책들이 있다. 책의 좋은 부분들은 내 마음 속 깊이 스며들어 내 성격과 앞으로의 행보에 나도 모르게 영향을 미치거나,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후자다. 나는 솔직히 여행을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작가는 작가로써의 삶과 여행자로써의 삶을 재미있는 일화들, 인용문들과 함께 흥미롭게 풀어낸다. 작가의 글은 독자인 나의 삶에 스며든다. 있어보이려고 어렵게 꾸며내지 않은 문장이라 더욱 즐겁게 읽었고, 오랜만에 미소를 띄우며 읽을 수 있었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은 몇 번이나 곱씹고 읽었다. 몇 년 만에 독후감을 써서 기억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우고 싶은 어린 시절의 불행한 (혹은 불행하다고 여겨왔던) 기억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좋은 추억들, 가끔 자기 전에 이불을 발로 차게 되는 내 실수로 인해 부끄러웠던 일화 등이 ‘프로그램*’으로 내재되어 나를 구성한다. 스스로 괴물이라고 표현하며 나를 미워했던 나지만, 앞으로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닐 고민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인생이라는 여행을 만끽하려 노력해봐야겠다. 그리고 또 다른 인생 여행자들에게 베풀며 살아가고 싶다.
*[프로그램]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 노아 크루먼은 ‘가지고 있는지 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 믿음에 더 좌우된다.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된다.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 같은 고정관념도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종차별주의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백인은 어쩌다 뛰어난 지적 성취를 이룬 흑인을 만나면 ‘흑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 는 대사를 칭찬이랍시고 치게 된다. 작가가 미리 생각해둔 프로그램이 인물의 대사가 되어 배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 관객은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 더 넓게 보자면, ‘프로그램’이란, 인물 자신도 잘 모르면서 하게 되는 사고나 행동의 습관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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